벤저민 그레이엄은 퀀트였던가?

투자 이야기 2023. 11. 28. 20:26 Posted by UnHa Kim

오랜만에 '현명한 투자자'를 다시 읽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진다.

특히, 2장의 미국 몇몇 채권 종류에 대한 설명에서 뭔가 현실에서 아주 동떨어진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만 읽고 싶어진다.

꾹 참고 계속 읽어봐도,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방어적이고, 심지어 켸켸묵었다는 느낌이 난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워렌 버핏이 극찬을 했다는) 명성에 비해서 그다지 큰 감흥이 없다.

(아무리 젊은 시절에 대공황을 겪어서 조심하는 게 몸에 익었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현실 투자세계에서 변동성에 된통 당한 후 다시 읽으면, 현실에서 골머리를 앓던 문제가 이미 거의 다 언급되어있다는 것에 놀라고, 보수적/방어적인 접근 방식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납득이 된다.

 

 

이번에 다시 읽다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14장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항상 정량기법에 헌신하는 태도로 증권을 분석했다.
나는 투자의 대가로 받는 보상을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숫자로 확인하고자 했다.
그 보상이 부족하면, 전망이 밝거나 미래가 유망해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투자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절대 아니었다.
사실 전문가 대부분은 전망, 경영자의 자질, 기타 무형자산 등 ‘인간 요인’이 과거 실적, 대차대조표, 기타 냉정한 숫자를 분석한 자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일반적인 애널리스트들은 업황, 장기 전망등에 '예측'에 중점을 두는 반면,

벤저민 그레이엄 본인은 손실을 피하기 위한 '보호'에 중점을 두면서,

(미래 전망에 무관하게) 투자 수익율을 설명해주는 숫자를 더 우선시 했다는 것이다.

이게 요즘 흔히 말하는 백테스트로 검증한다는 방식과 상통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옹은 1976년에 사망했으니까, 그 당시에 컴퓨터로 백테스트를 할 여건이 안 되었을 텐데, 이걸 손으로 일일이 다 계산해서 확인했다는 걸까?

 

사실 일반인(방어적 투자자)에게는 정적 자산 배분 전략을 권장하고, 공격적 투자자에게는 NCAV를 포함한 몇몇 공식(혹은 필터)를 이용해서 정량적으로 선별된 종목에 투자할 것을 권장했는 데, 이건 요즘 유행하는 퀀트 투자법과 굉장히 유사하다.

어쩌면, 소위 퀀트라는 게 결국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법을 좀 더 발전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생존하던 시기에는 미국에서 개인의 금 보유가 금지되었기에

벤저민 그레이엄이 권장하는 자산 배분 전략에는 금이 빠져 있지만,

요즘에는 금 보유 제한이 풀려있기에 최근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정적 자산 배분 전략에 금이 포함되며,

벤저민 그레이엄 자산 배분 중 주식 비중을 우량 대형주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할 것을 권장했지만,

요즘에는 지수 추종 인덱스 ETF 하나로 주식 투자 비중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점등

시대 변화에 따라 약간의 디테일에 차이는 있지만,

섣부른 예측으로 과도한 몰빵 투자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리밸런싱 과정에서 '저가 매수/고가 매도'를 반복하는 '섀넌의 도깨비' 효과를 노리는 등의 큰 맥락은 동일하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제시한 NCAV전략은 사용되는 지표만 다를 뿐, 간단한 지표를 통해서 저평가된 종목을 찾는다는 점에서 PER, PBR, EV/EBIT등의 가치 팩터를 사용하는 전략과 큰 맥락은 동일하다.

(다만, 벤저민 그레이엄은 (대형주의 경우를 제외하고) 가치투자 철학에 어긋나는 추세(모멘텀) 팩터를 부인했다.)

 

'현명한 투자자' 초판이 출판된 게 1949년인데, 내가 쓰는 기법이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니, 벤저민 그레이엄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간 사람이었는 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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