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클라만'이 1991년에 저술한 'Margin of Safety'(안전 마진)을 읽었다.
1991년에 출간 당시에는 판매가 부진해서 1쇄만 찍고서 바로 절판해 버렸는 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스 클라만'의 명성이 올라감에 따라 이 책도 열렬한 추종자를 얻어서 아마존에서 중고책이 900달러 넘게 팔리는 귀한 몸이 되었다.
정품 전자책도 없어서, 이 책을 읽으려면 어쩔 수 없이 해적판 PDF파일을 구해서 읽어야 한다.
검색 엔진에 'Margin of Safety pdf'로 검색하면 영문판은 물론 한글 번역판 PDF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글 번역 PDF는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AI 한글 번역 위주로 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만 영어 원문을 읽었다.
책에 소개된 '가치 투자' 이론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에 나온 '가치 투자'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더 좋고, 가치 투자의 필요성과 비교 우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특히, 금융 기관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행하는 자산 운용 행태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해 놨는 데, 이 책이 1쇄만 찍고 절판한 이유 중에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과의 사회적 관계로 인한 부담감도 작용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1980년대 정크본드 버블 붕괴 역사에 나오는 CBO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혹은 리먼 사태로 대변되는) 2000년대 중반의 미국 부동산 투기 버블 붕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CDO와 거의 유사한 금융상품이었고, 인간의 실수는 반복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월스트리스 자산 관리 업계는 보상 구조가 잘못 짜여져 있어서 '투자 수익율'이 아니라, '운용 자금 규모'에 따라 '펀드 매니저'의 보상이 커진다. ( '운용 자금 규모'의 고정 비율을 수수료로 취득하는 구조.)
고객의 입장에서는 '높은 수익율'이 중요하지만,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최저 수익율'을 피해서 경쟁사에게 투자금을 빼앗기지 않고 '운용 자금 규모'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율을 올리는 전략일지라도, 단기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전략은 쓰지 않고, 장기적으로 그저그런 애매한 수익율을 올리는 전략일지라도, 단기적으로 경쟁사에게 뒤지지 않는 그저그런 안전한 전략만 구사하게 된다.
즉, 일반 대중은 전문가에게 투자금 운용을 맡길 때 전문성을 발휘하여 높은 수익율을 올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 전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단기적인 리스크만 피하면서 평균에 가까운 그저그런 수익율을 내는 방식으로 운용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는 '운용 자금 규모'가 커질 수록 수익율을 올리기 힘들어지는 문제가 겹쳐서 소중한 자산을 맡긴 고객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된다.
찰리 멍거가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는 데, 그게 이 뜻이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다만, 큰 실수를 반복하는 개인투자자는 직접 운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평균적으로 운용되는 나을 수도 있다.
즉, 금융 업계의 자산 운용 방식은 개인투자자의 큰 실수를 줄여주는 것이 그나마 장점이다.)
결국, 높은 수익율을 위해서는 금융 업계에 널리 퍼진 단기적이고, 상대적인 평가 방법에서 벗어나서, (단기적으로는 평균을 하회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장기적이고, 절대 수익율 기준의 투자 방법으로서 '내재 가치'와 '시장 가격' 간의 차익 거래로서 가치 투자의 비교 우위를 설명한다.
그 외에 절대적 가치 평가의 어려움에 대한 설명과 그로 인해서 가치 평가는 '정확한 값'이 아니라 '대략적인 범위'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널리 인정받은 가치 평가 방법 3가지를 소개한다.
책 후반부에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투자 기법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몇 가지 나오는 데 너무 어려워서 대충 넘겨버렸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영어 원문의 가독성은 훌륭하며 술술 읽히는 느낌이다.
책 전반적인 느낌을 표현하자면 '벤저민 그레이엄'이 손실에 대한 방어적 태도에 중점을 뒀다고 한다면,
'세스 클라만'은 일반 대중에게 불리하게 짜여진 금융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비교 우위를 가진 투자 방법론으로서의 가치 투자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인 어법이다.
그럼에도 단점은 있으니, 가치 투자를 일관되게 실행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성장주 중심의 시장에서 평균을 하회할 때의 버틴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특히, 책에는 하락장에서 가치 투자가 빛난다고 서술해 놨는 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저평가 종목도 하락장에서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파고 드는 경우도 흔하다.
(인간의 비합리성은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가치 투자'라는 게 초심자가 책 몇 권 읽고 덜컥 뛰어들면 정신적으로 호되게 당하기 마련이다.
찰리 멍거가 직접 펴낸 '가난한 찰리의 알마낙'이 한글로 번역이 안 되어 있을 때, 찰리 멍거 마니아인 김재현님이 답답한 마음에 대체품으로 찰리 멍거의 명연설 위주로 엮어서 출판되었던 책인데, 지금은 '가난한 찰리의 알마낙'이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므로 예전에 비해 가치가 약간은 희석된 면이 있다.
그럼에도, 투자 서적 번역계의 거장 '이건'님이 번역에 참여했기에 내용도 좋고, 번역도 무척 깔끔해서, 한 번 잡으면 계속 읽게 된다.
이 책은 투자/경제에서 벗어난 여러 학문의 핵심 개념을 아우르는 다면적 사고 방식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투자에 관련된 부분조차 상당 부분이 심리학 혹은 행동경제학에 관한 내용이다.
책 전체에 흐르는 기조는 평균을 뛰어넘는 초과 수익율 달성을 위해서는 남보다 우수한 분석, 엄청난 인내심, 과감한 실행력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한 마디로 프로의 세계에서 앞서가려면 남달리 잘 해야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많은 분석과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3~4개의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살 뺄려면 적게 먹고 운동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이어트 성공율은 지극히 낮다.
뻔히 알아도 실행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는 (찰리 멍거처럼 특출나게 잘 하는 것보다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 주식 투자자 70%는 종목 1~2개에 몰빵 투자를 하고, 90%의 확률로 5년 내로 투자 원금을 모두 잃는다.
이런 상황에서 찰리 멍거처럼 면밀한 분석 끝에 3~4개 종목에 집중 투자를 한다는 게 가능할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좀 더 따라하기 쉽고, 치명적인 실수를 줄여주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방어적 투자법이 더 적합한 것 같다.
- 주식 이외에 채권등 다른 자산군에도 분산 투자
- 주식조차도 분산해서 종목 분석 실수로 인한 충격 완화.
- 저평가 된 종목만 보유.
(저평가 종목의 장기 수익율이 좋은 이유는 상승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하락율이 낮아서이다.
수익/손실 비대칭성으로 인해서 하락율이 낮은 게 장기적으로 복리 수익율 면에서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경제학에서 벗어나 폭넓은 학문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단순한 계량적인 분석에서 벗어나서 심리학, 업종, 시장 경쟁등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찰리 멍거의 주장은 지금은 똥손이지만, 미래에는 고수가 되기를 꿈꾸는 투자자라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인 것 같다.
찰리 멍거가 직접 펴낸 '가난한 찰리의 알마낙'이 한글로 번역이 안 되어 있을 때 그 대체품으로 나왔던 책인데, 지금은 '가난한 찰리의 알마낙'이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므로 그 가치가 약간은 희석되었지만, 여전히 참 좋은 책이다.
('이건'님이 번역에 참여한 책은 내용도 좋고, 번역도 깔끔해서 거를 책이 거의 없다.)
절반쯤 읽었는 데, '롤라팔루자' 효과라는 처음 듣는 용어가 흥미를 끌어서 조사를 해 봤다.
찰리 멍거는 여러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할 때, 개별 요인이 단순히 합쳐진 것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롤라팔루자' 효과라고 칭한다.
원래 '롤라팔루자'(lollapalooza)는 미국에서 여러 뮤지션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뮤직 페스티벌의 이름이라고 한다.
개별 뮤지션이 공연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청중보다여러 뮤지션이 합동 공연하면서훨씬 더 많은 청중들이 모이는 현상에 비유한 듯 하다.
공개 구두 경매에서 입찰자들이 호가를 제시하면서 그 자체가 사회적 증거로 작용하면서 상호성 편향, 과민 반응 증상등 여러가지 심리적 편향이 겹치면서 경매 참여자의 판단이 흐려져서, 평소라면 불가능할 어처구니 없는 가격에 낙찰이 이루어지는 것을 '롤라팔루자'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주식 참여자들이 여러가지 심리적 편향에 휘말려서 판단력이 마비되어서 비이성적인 가격 오류가 발생하여서 '효율적 시장 이론'을 믿지 않는 투자자에게 좋은 기회가 생기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롤라팔루자' 효과가 유용하다고 한다.
'롤라팔루자' 효과는 자연과학의 중단점(breakpoint)나 임계점(critical point)등의 개념과도 상통한다고 한다.
마치, 물이 99도까지 액체로 존재하다가, 단 1도만 높아졌을 뿐인데,. 100도에서 갑자기 기체로 변하면서 완전히 다른 물성을 갖는 것처럼, 주식 시장에서 몇 가지 심리적 편향이 겹치다보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1~2가지 편향으로는 불가능한) 엄청난 가격 변동이 발생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라고 설명한다.
투자에서도 기업의 재무 상황 이외에도 내부 경영 상황, 경영자 자질, 시장 상황, 경쟁 기업 상황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쳤을 때, 크나큰 가격 변동이 발생하면서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으므로, 계량적 재무 분석등 1가지 요인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심리적 요인이나 업종 특성등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계량적 요인을 포함한 여러가지 요인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찰리 멍거 특유의 철학을 표현할 때도 '롤라팔루자' 효과는 연관성을 가지는 듯 하다.
계량 분석에만 기대어 극도로 게으른 투자를 선호하던 나로서는 이 늦은 나이에 (겉핡기 식으로라도) 심리학 공부를 해봐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계량적인 분석과 규칙에 따른 투자법으로 훌륭한 투자자를 모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주식 팩터 전략의 백테스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투자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단 2주 간의 교육만 받고 성공적인 트레이딩을 수행한 터틀 실험에 관련된 서적을 읽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몇 년 간의 실전 투자 경험을 거치면서, 스스로가 변동성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훌륭한 투자자'가 되기보다는 '폭망하지 않고 자본주의 성장의 과실을 평균만큼이라도 줏어먹는 투자자'가 되기로 목표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되돌아 보면, 터틀 실험의 최고 우등생이었던 '커티스 페이스'가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투자 업계에서 조기 은퇴했다가 나이가 한참 먹은 후 투자업에 복귀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감옥 갔던 반면, 터틀 실험에서 '커티스 페이스'만큼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던 또 다른 터틀 실험 참여자인 '제리 파커 주니어'는 '체사피크 캐피털'이라는 대형 펀드사를 설립해서 성공적인 펀드 매니저로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니, 결국, '훌륭한 투자자'를 구분짓는 것은 지식과 기술 이외에 심리적 요인이 큰 것 같다. (제리 파커 주니어가 CEO로 등록된 체사피크 캐피털 홈페이지 : https://chesapeakecapital.com/team/)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4판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적절한 투자 기질을 갖추는 편이 재무, 회계, 주식시장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추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지식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투자 기질을 갖춘 '평범한 사람들'이 돈을 훨씬 더 벌고 유지한 사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