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투자라는 개념을 창안한 벤저민 그레이엄이
일반인을 위해서 (그나마) 읽기 쉽게 썼다는 책이 '현명한 투자자'이다.
세계 최고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투자 관련 서적 중 최고로 꼽은 책이기도 하다.
'현명한 투자자'는 불멸의 고전으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어려워서 정작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벤저민 그레이엄 제자 중에서 최고 학점을 받았고,
이 책을 달달 외울 수준으로 깊이 연구했던 워렌 버핏 수준이 아니라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다 읽고나면 머리가 멍한 게,
뭔가 좋은 내용이 많은 것은 알겠는 데, 남는 게 없는 그런 난해한 책이었다.
책의 난이도를 낮춰보겠답시고,
그레이엄 사망 후 주석을 달아서 '최신 개정판'(5판)을 냈는 데,
안 그래도 난해한 원문에 그다지 쉽지 않은 주석까지 얹혀져서
오히려 난이도를 더 높이는 참사를 낳았다.
이번에 투자 서적 관련 유명 번역가 '이건'이라는 분이
벤저민 생전에 직접 서술한 4판을 가져다
분해 후 재조립 혹은 재창조에 가까운 번역 작업을 했고,
그 결과 일반인이 읽을만한 수준으로 난이도가 확~ 낮아진 책이 되었다.
1920년대 호황,
1929년 대공황,
1940년대 2차 대전,
1950년대 호황,
1960년대 고고 시대,
1970년대 니프티 피프티, 인플레이션까지
벤저민 그레이엄이 대공황 때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고서 가치 투자 철학을 확립한 후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인 고수익을 올리며
스타 펀드 매니저 및 명문대 교수로서 명성을 유지했던
수십년 간의 투자 경험을 토대로
일반인도 따라할 수 있는 손쉬운 투자 전략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단점은 대공황 때 겪었던 실패의 충격이 컸던 탓인지,
제시된 투자 전략이 극도로 방어적이라는 점이다.
버블 붕괴의 충격을 경험하지 못한 일반인에게는
이 책에 나온 투자 전략이 왜 그렇게 수동적이고 방어적인지 이해되지도 않고,
강세장에 주변 사람들이 대박을 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 책에 나온 안전 위주의 전략이 너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져서,
좀 더 화려한 인기주, 성장주 위주의 투자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데,
강세장에서의 인기주, 성장주 투자야말로 벤저민 그레이엄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이다.
튜울립, 식민지 사업 독점권, 자동차, 블루칩, 인터넷 닷컴 등등
구체적인 이름과 내용은 바뀔 지라도
세상을 바꿀 신기술, 신개념, 신사업등으로 화려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는 기업에 쏟아지는
무차별 투자 광풍은 항상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시장의 거품이 터지고, 광란이 가라앉은 후 계좌 잔고를 탈탈 털리고 난 이후에야
방어적 전략에서 느껴지던 답답함과 지루함이 지나고 보면
소중한 안전 마진의 자그마한 댓가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스터 마켓'의 변덕에 경험한 이후에도
주식 투자를 지속할 의지(와 계좌 잔고)가 남아있다면,
여러 투자의 대가들에 의해서 증명된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방법이
이미 수십년 전에 발견되어 있다는 것은 일반인에 대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어서
이 책을 읽고난 후 아무리 감명받았더라도
'탐욕과 공포'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생각날 때마다 읽어보면서 자기 자신을 추스리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1630년대 튜울립 버블 -> 대폭락
1720년대 미시시피 회사, 남해 회사 버블 -> 대폭락. 천재 물리학자 뉴턴도 물렸음.
1920년대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버블 -> 대공황. 히틀러 출현 및 2차 대전 발발 배경.
1960년대의 고고 시대 (Go Go Years), 니프티 피프티(niftty fifty) 버블 -> 블루칩 폭락.
1990년대초 일본 부동산 버블 -> 잃어버린 30년.
2000년대초 IT 버블 -> 나스닥 70% 폭락
2007년 미국 부동산 버블 -> 부동산 채권 부실로 인해 주가도 폭락.
지금도 진행 중인 2020년대 언택트, 전기차, 배터리 버블. (이 쯤 되면 결말이 뻔해 보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하며, 이 책의 가치는 오랫동안 유지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