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의 무서움

투자 이야기 2024. 1. 31. 11:15 Posted by UnHa Kim

지식산업센터에 투자했다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사연이 나오는 영상을 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Zm91oz07Kw

 

영상을 보면서 포인트가 좀 엇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투자 대상이 지식산업센터이어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부동산 투자이어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며,

PF대출이 관련되어 있어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라고 본다.

진짜 원인은 과도한 레버리지이다.

언론 입장에서야 부동산 PF대출이라는 용어와 특정한 현상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자극하고 싶었겠지만 이게 과연 시청자의 투자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문스럽다.

 

어떤 투자이던, 어떤 사업체이건 과도한 레버리지는 파멸의 지름길이다.

그나마 예외가 있다면 정부의 보호를 받는 금융업 정도일 것이다.

은행은 '예금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정부가 보증을 해서 갑작스러운 부채 상환 요구(뱅크런)을 막아준다.

은행이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면 한국은행에 발권력을 동원해서 돈을 찍어서라도 자금을 마련해 준다.

은행이 정말 망하려고 하면 공적자금,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세금을 써서라도 파산은 피하게 해준다.

이렇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투자 행위, 사업 영위에 있어서 과도한 레버리지는 파멸의 지름길이다.

 

영상을 보면 초기 투자금 10%만 내면 나머지는 90%는 대출을 받아서 투자가 가능하다는 말에 혹한 것 같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레버리지 비율 900%'라는 무시무시한 조건이다.

이렇게 위험한 투자를 권하는 비양심도 놀랐고, 그토록 위험한 조건이 '초기 투자금 10%만 내면 된다'라는 식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고 달콤하게 포장된다는 것도 놀랍다.

그리고, 이 말에 속아 기본적인 투자 원칙을 무시하고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어지간한 중소기업은 부채비율이 200%만 넘어가도 은행 대출 연장이 어려워지기 쉽상이다.

상당한 재벌인 한진그룹도 한진해운이 부채비율 400%를 넘어간 후 '부채의 악순환'에 허우적거리면서, 총수 일가가 줄줄이 불안장애에 걸려서, 땅콩 파문에, 이혼에, 가정 파탄을 겪고, 경영권 욕심을 내려놓고 유상증자까지 했지만 결국 한진해운의 파산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일개 개인이 레버리지 900% ??

이건 죽음의 길이다.

 

개인적으로 2010년대 초반에 조선 산업 버블이 터지는 과정을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이번에 부동산 투자의 버블이 터지는 과정을 보면서 예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제로 금리가 너무 오래동안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부채의 무서움을 잊어버린 것 같다.

과거 수백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평균적인 금리는 4% 정도이었고, 2010년대 이어진 제로금리가 예외적이고 특수한 상황이었다.

과도한 레버리지는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워렌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전문가를 위한 '증권 분석'이 일반인에게 너무 어려워서, 일반인에게 바람직한 투자 태도와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난이도를 낮춘 '현명한 투자자'를 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반인을 위해서 쓴 '현명한 투자자'가 쉬운 책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처음 읽는 사람은 상당한 장벽을 느낀다.

 

안 그래도 난이도가 높은 원문에, 츠바이크의 해설까지 덧붙여 난이도를 더 높여버린 6판의 번역본을 읽고 있노라면 '고전이란 모두가 칭찬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투자 관련 서적 최고 인기 번역가인 이건 선생님이 (군더더기가 없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생전 마지막 저서인) 4판을 번역하면서, '번역 후기'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원문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고 밝힐 정도로, 창조적 파괴에 가까운 의역을 통해서 가독성을 높였음에도, (이제 그나마 읽을만 해 졌다는 정도일 뿐) 여전히 책이 술술 읽힌다는 느낌은 없다.

그렇지만, 책 내용은 보석 같은 경험과 조언이 가득하므로, 독자의 경험치 수준에 따라서 읽을 때마다 아는 만큼 새로운 게 보이는 신비로운 책이다.

4판이라는 게 중요하다. 6판은 진짜 해독 불가...

 

워렌 버핏이 도서관에 있는 모든 투자 관련 서적을 읽은 후, '현명한 투자자'를 처음 접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일반인은 '현명한 투자자'가 도서관에 있는 모든 투자 관련 서적 중 최고였다라는 찬사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워렌 버핏이 어려서부터 실전 투자를 이어오면서 경험을 축적했고, 투자 관련 서적도 엄청나게 많이 읽은 후였기 때문에 , 비록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현명한 투자자'를 읽을 무렵이면, 이미 상당한 내공을 쌓은 상태이었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자' 처음 읽을 때 바로 그 가치를 이해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이번에 다시 읽고 있는 데, 제 2장 '투자와 인플레이션' 내용 중 '금(골드)' 관련 언급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35년동안 금의 시장가격은 (... 중략 ...) 겨우 35% 상승했다.
그러나, 이 기간 내내 금 소유자는 투자 원금에 대해 이자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해마다 보관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 중략 ...)
금이 인플레이션 방어에 거의 완전히 실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범한 투자자가 실물자산에 투자해서 과연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을 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금 투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으며, 이런 태도는 워렌 버핏에게도 이어진다.

(정작, 워렌 버핏은 1990년대에 어마어마한 '은(실버)' 투기를 했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금'은 별로일까??

인베스팅닷컴 데이터에 의하면 금 선물은 1976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1,500% 상승하면서 연복리  6% 수익율을 기록했다.

평균 인플레이션 3%라고 가정하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에 충분했다는 의미이다.

대공황부터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초고수 투자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이렇게나 중요한 자산군에 대해서 잘못된 의견을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이 책은 1971~1972년에 저술되어서 1973년에 출간되었는 데, 1971년에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금 가격의 족쇄가 막 풀려난 시점이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벤저민 그레이엄 살아 생전의 대부분의 기간에는 금 태환이 이루어지면서 금 가격이 고정되어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통화량을 증가시키고자 금 교환 비율을 바꿔서 달러 가치를 하락시킨 것이 유일한 예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한 수십년 간의 극도로 억제된 금 가격이 족쇄가 막 풀리던 시점에 책이 쓰여졌다는 의미이다.

 

금 태환이 중지된 이후 오랜 기간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길게보면 인플레이션 방어 용도로는 충분히 유용했기에

금을 투자 자산군에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할만 하다.

 

금 관련 내용은 '현명한 투자자'에서 몇 안되는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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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면서도 장기간에 걸쳐서 20%가 넘는 투자 수익율을 올렸다는 재야고수 (온라인 필명) '숙향'이라는 분이 책을 몇 권 냈는 데, 그 중 1번째 책은 비교적 간단한 가치 평가 공식과 필터링 조건을 제시하여, 초보자도 따라할 만한  가이드를 제공해 준다.

그 외에도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온 몸으로 겪고 살아남았던 체험 기록이 있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 얼마나 올바른 판단을 하기 힘든 지는 당시 분위기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시점에 돌아보면 워렌 버핏이 맞고, 다른 사람이 다 틀렸는 데, 거꾸로) 당시에 한국 언론에는 워렌 버핏을 '새대가리'라고 희화하 하는 기사가 있을 정도로 워렌 버핏의 의견은 무시되었다고 한다.

주식 시장이 반등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9년 초반에는 (낙관론으로 유명한) 피터 린치마저도 낙관론을 접었다고 한다.

(워렌 버핏은 이렇게나 분위기가 암울하던 2009년 초반에 BNSF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철도 기업을 인수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서 대박을 쳤다. 워렌 버핏은 좀 독보적인 듯...)

 

필자 본인은 주식 포트폴리오를 붙들고 그냥 버텼다고 하던 데, (워렌 버핏을 제외한) 거의 모든 투자 대가들조차도 비관론을 표명하던 저 때를 버틴다는 것은...

(필자 본인의 말로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할 듯 하다.


주식시장은 인내심 없는 사람의 돈이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흘러가는 곳이다. - 워렌 버핏

 

투자라는 것은 책으로 읽을 때는 할만해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 하면 저걸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약간의 인내심'으로 저 모든 걸 다 버텼다는 겸손한 재야고수 숙향의 투자 일기는 배당수익율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일깨워준 고마운 책이다.

퀀트킹 같은 프로그램에 '배당수익율' 팩터를 넣고 백테스트를 실행하면 기대수익율이 떨어지므로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되지만, 그건 (보유하는 종목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기계적인 리밸런싱을 수행할 때의 이야기이고, 가치 투자처럼 개개 보유 종목을 인식하고 장기 보유하는 경우에는 투자 지속성에 있어서 배당수익율이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숙향님의 2번째 책도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는 1번째 책이 더 흡입력이 높았고, 잘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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